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황금마차 습격사건 (문단 편집) === 드라마 [[야인시대]] === [include(틀:야인시대의 사건 사고)] [youtube(vJUzsE-XF_U)] > 이른바, 황금마차 습격사건. > 삼우회의 담합대회가 열리던 그 날 동대문과 서대문, 종로의 연합 세력들은 명동을 기습공격하며 대혈전을 벌이게 된다. > 명동이 관리하는 황금마차라는 유흥업소가 종로 지역에서 개업을 했다는 명분이었지만, 사실은 삼우회의 세력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 그러나 이 전면전은 앞서 본 것처럼, 명동이 배수의 진을 치고 대항하여 이김으로써 삼우회는 크게 망신을 당하고 끝이 난다. > 그리고 이 사건으로 하여 청계천을 중심으로 한 양대 주먹세력의 갈등은 더욱 깊어져만 간다. > ---- > - 야인시대 111화 中 [[나레이션(야인시대)|내레이션]] [[야인시대]]에서는 투석전 없이 주먹패 간부들 간의 일기토와 패싸움만 묘사되었다. 동대문 패거리들이 삼우회를 결성하였고 한창 기가 오른 주먹패들 사이에선 명동파를 박살내자는 의견들이 나온다. 때 마침 명동의 소유인 황금마차가 개업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돼지는 이를 습격하자고 주먹패들을 선동해 이에 동조한 술에 취해있던 주먹패들은 황금마차를 습격하고자 각 조직에서 인원을 차출해 명동으로 쳐들어간다. [[독사(야인시대)|독사]], [[권상사]], [[망치(야인시대)|망치]], [[김삼수|삼수]], [[돼지(야인시대)|돼지]]가 삼우회[* 가장 적극적으로 나선 건 서대문 쪽이었다. 독사와 고바우가 하는 말을 들어보면 동대문 주먹들은 이정재의 엄명도 있고 명동이 만만치 않다는 것도 잘 알았지만 세집중에 두집이 나서니 혼자 빠지면 가오가 죽어서 위신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합류했다. 더욱이 삼우회는 엄연히 동대문이 주측으로서 만든 연합회이니만큼 아무래도 명목상 본대이자 본가라고도 할 수 있는 동대문이 빠지기에는 곤란한 상황이기는 했다.]를 데리고 황금마차를 치러 가자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명동파의 행동대장 [[오상사]]와 [[맨발의 대장(야인시대)|맨발의 대장]]이 20명 정도의 부하를 소집해 방어에 나섰다.[* 사건 직전에 명동파 간부들이 삼우회 결성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이 때 오상사는 부하들 중에서 독종들을 뽑아놓아 혹시 모를 삼우회의 공격을 대비하고 있음을 언급한다.] 먼저 행동대장끼리 일기토가 벌어졌는데 오상사와 돼지가 싸워 돼지가 나가 떨어지고 이후 삼수와 오상사가 대결을 펼치다 삼수까지 열세에 몰리고 오상사가 추가타를 날리려는 타이밍에 독사가 대결에 난입한다. 뒤이어 맨발의 대장까지 끼어든 끝에 일기토는 명동 쪽의 우세승으로 끝나고 기세를 탄 명동쪽이 달려들면서 패싸움으로 이어졌고 싸움은 삼우회 측의 완패로 끝났다.[* 이때 오상사를 연기한 배우 라재웅은 저 장면을 촬영하다가 어깨 근육이 찢어져서 지금도 후유증이 있다고 한다. 밤새워 아침까지 싸우는 장면만 촬영했다고 한다.] 명동파의 방어 병력은 삼우회에 비해 극도로 열세했으나 명동파는 과거 [[서북청년단]]이 주축이 된 조직이라서 공산당과 패싸움 경험이 많았고 [[오상사]]와 [[맨발의 대장(야인시대)|맨발의 대장]]을 중심으로 단결이 잘 된 상태였다. 반대로 삼우회 조직원들은 결성식 때 연회를 가져 술에 거나하게 취한 상태였으며 당일 결성된 조직에서 결속력과 단합력, 그리고 지휘체계가 제대로 있을 리가 없었다. 그 결과 패싸움 때 명동파를 밀어붙이기는 커녕 수두룩하게 도망가다 막판엔 아예 포위되어 버렸으며, 이후 삼수와 독사가 서로를 탓하며 언쟁하면서 주먹다짐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갔고, 권상사와 망치가 겨우 만류했다. 게다가 패싸움 전의 일기토에서 명동파의 오상사와 맨발의 대장이 삼우회의 돼지, 삼수, 독사를 꺾어 사기를 떨어뜨리는데 일조했다. 결국 부하들이 멋대로 습격했다는 소식을 고바우를 통해 듣고 [[이정재(야인시대)|이정재]]가 조직이 막 안정화 되려는 시점[* 단성사 저격 사건이 수습된지 얼마 안 되는 시점이었다.][* 더욱이 이번 싸움은 엄연히 동대문을 중심으로 한 삼우회에서 먼저 공격을 들어간 것이라서 싸움이 더 커지면 불리한 건 동대문이였던 점도 이유 중에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에서 사태가 더 커지면 곤란하다고 생각해 일단 이석재를 통해 비상 대기인원 20명을 준비한 뒤 경찰들을 출동시켜 더 이상의 사태 악화를 막았지만 이는 나중에 [[충정로 도끼 사건]]으로 이어진다. 소설에서는 감격시대와 유사했는데, 삼우회가 건물사이의 골목으로 들어서자 옥상에 대기하고 있던 명동패가 투석공격으로 박살내고 심지어 후퇴하던 삼우회를 뒤쫓아가 시내 한복판에서 투석전을 벌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